[아르떼 칼럼]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음 내던 소프라노, 마도 로뱅

입력 2023-10-13 17:44   수정 2023-10-14 00:42

사람들은 언제나 높은 곳을 동경한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내려다본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높이’란 권력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높이에 대한 동경은 음악세계에도 있다. 성악가에게 가장 높은 음을 낸다는 건, 때로는 최고의 자리를 의미한다. 가장 높은 소리를 내는 테너와 소프라노에겐 더욱 그렇다.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테너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별명은 ‘하이C의 제왕’이었다. 하이C는 일반인은 평생 한 번도 내기 힘든 ‘높은 도’(3옥타브 도)를 말한다. 197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하이C 음이 연달아 아홉 번 나오는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 중 ‘아, 친구들이여 오늘은 기쁜 날’이란 아리아를 멋지게 부른 다음 이런 별명이 붙었다.

소프라노에게 ‘고음 도전 과제’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불타오르고’란 아리아다. ‘밤의 여왕 아리아’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찔한 고음에 엄청난 기교가 필요하다 보니, 이 곡을 잘 부르면 단박에 최고 성악가 자리에 오른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의 루치아 포프, 지구의 노래를 외계인에게 소개하기 위해 보이저 2호에 실린 레코드의 주인공 에다 모저, 당대 최고 콜로라투라 에디타 그루베로바, 게오르그 솔티도 극찬한 ‘신이 내린 목소리’ 조수미, 목소리뿐 아니라 완벽한 ‘밤의 여왕’의 모습을 연기한 프랑스의 자랑 나탈리 드세이와 독일의 디아나 담라우 모두 ‘밤의 여왕’으로 최고 소프라노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 전에 가장 높은 목소리로 세상을 평정한 소프라노가 있었다. 마도 로뱅(1918~1960),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1950년대엔 영화배우 맞먹는 스타였다. 그는 13세 때 성악에 입문한 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19세 무렵 파리 오페라극장이 주최한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전쟁 탓에 무대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1942년 파리의 ‘살 가보 극장’에서 데뷔했는데, 그의 진가를 알아본 음반사 파테마르코니가 첫 음반을 녹음했다. 27세 무렵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주인공 ‘질다’로 파리 오페라에 데뷔한 그는 이후 ‘마술피리’, 들리브의 ‘라크메’,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고음이 등장하는 오페라에 도맡아 출연했다. 1955년 모나코 국왕과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식에 초대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도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소프라노’란 표현은 로뱅의 음반 라이너 노트에서 그를 설명하는 첫 문장이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 그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톱-톱C’(4옥타브 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혹자는 그가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하는데, 굳이 확인할 필요 없이 그냥 한번 들어보면 믿을 수밖에 없다.

그의 목소리는 요즘 가수들과는 무척 다르게 들린다. 온몸을 악기처럼 공명시켜 크고 멀리 내보내는 클래식 발성법은 간혹 부담스러운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로뱅의 목소리는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가냘프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 소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하다. 가장 높은 목소리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성악가의 길을 택한 것, 41세란 짧은 삶 동안 멋진 음반을 여럿 남긴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말이 살찌고 하늘이 높아진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에, 시원한 로뱅의 노래를 들으면서 더위에 지친 우리의 마음도 씻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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